자유론 철학


자유론
존 스튜어트 밀 (J.S. Mill) 저
권기돈 역
펭귄클래식 코리아(웅진임프린트)
10,000원


 영국의 공리학자이자 자유의 아버지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었다.
이 당시에는 글을 어렵게 쓰는게, 수사학적으로 아름다운, 권장되는 일이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 때 글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다. 쉽게 쉽게 읽히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서 차근차근 밀의 생각을 따라가면서 보면 또 읽을만도 하다.

 밀은 1806년에 태어났으며 빅토리아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아버지인 제임스 밀과 아버지의 친구인 제레미 벤담에게 엄격히 교육을 받았으며,
뛰어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로 길러졌다. 그 때문에 감성이 완전히 메마른 상태가 되기도 했다.
20대에 벌써 신경쇠약에 걸리고, 또 헤리엇 테일러와의 뜨거운 사랑도 유명하니 더 길게 쓰지는 않겠다.
남편이 있는 여자와 공개 아닌 공개 연애를 했지만, 또 외관상의 친구 이상의 선은 넘지 않았으니
외도라도 보기도 참 묘하고, 여튼 특이한 관계다.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도 그렇고, 이 자유론의 서문에서도 그녀를 극찬한다.
그런걸 보면 밀은 마샬이 말한 '뜨거운 가슴와 차가운 머리'를 가진 사람인것 같다.

 
 이제는 자유론의 내용에 대해서 더 깊게 알아보기로 하자.
서론에서 밀이 쓴 이 말이 참 마음에 와닿는다. 내가 생각하는 자유의 보장의 범위와 가장 일치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계속 추구 가능한 자유의 보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의 서문을 쓴 거트루드 힘멜파브의 말 대로 '자유'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절대 침범할 수 없는 하나의 성역과도 같은 절대적 위치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자유의 보장의 범위와 그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자유 자체에 대한 논의는 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 그 자체는 현대 사회의 하나의 공리로서 인식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밀이 '자유에 관한 작은 책'이라고 말한 자유론은 자유의 보장에 대한 범위를 논한다.
하지만 복지의 측면이나 보장의 범위 보다는 더 원론적으로, 자유가 왜 보장되어야 하는가를
더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아닌 사람을 설득한다.



 이 책의 서론 다음에 등장하는 2장의 제목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관하여'다.
밀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 즉 사적인 의견을 어디서든 자유롭게 말하고 공론화할 자유를 주장한다.
대중의 표준 의견이나, 현재에 '진리'라고 믿어지는 것과 다른 것에 대한 배타성을 제거하자고 한다.

(사실 나는 '진리'라는 말의 사용에 굉장히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진리보다는 진실 혹은 정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밀의 말을 그대로 쓰겠다.)

 현재 우리가 믿는 진리 혹은 보편적인 의견은 이 시대에만 통용되는 내용이다.
영원불변한 진리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우리가 새로운 의견을 억압할 정당한 근거는 없다.
밀은 여기서 종교, 특히 기독교도들도 비판한다. 로마시대에는 기독교도가 소수였으며
가장 현명하다고 여겨지는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조차도 기독교를 박해했다고 한다.
즉, 가장 현명한 사람도 미래의 보편성 혹은 진리를 알 수 없으며, 억압에 대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고로 기독교도들은 과거를 생각하며 좀 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한다.
밀이 기독교도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빅토리아 시대에는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쇄신의 기간이었으므로 비판이 상당히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중간 중간에 밀은 기독교도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는걸 보고 그렇게 느꼈다.

 여기까지는 진리가 영원불변하지 않을 때, 즉 틀릴 가능성이 있을 때의 이야기고
밀은 현재의 진리가 말 그대로 옳은 것일 때의 경우에도 자유가 권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공인된 진리는 교조주의적으로 변하며, 그 정신은 사라지고 문자만 남는다고 말한다.
밀의 표현대로 '껍데기'만 남은 진리는 그 의미를 잃고 만다.
하지만 새로운 의견 혹은 의심은 이 문자화된 내용이 없는 진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진리에 대한 의문과 반박 혹은 옹호와 설명 등을 통해서 그 진리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무언가 큰 경험을 하고, 사람이 갑자기 진로를 바꾸거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경우가
꽤 많은 것으로 보아 경험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가 없다.
즉, 밀은 수동적으로 주어진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진리를 쟁취할 때만
그 의미가 살아 있고 또한 개인에게 의미가 있고, 창시자의 의견을 올바로 전승할 수 있다고 본다.

2장의 내용을 종합하자면, 진리가 불변적이든 가변적이든 적극적인 의견의 표명은 보장되어야 한다.




 3장의 제목은 '복리의 한 요소로서의 개성에 관하여'이고
4장의 제목은 '개인에 대한 사회의 권위의 한계에 관하여'다.
이 두 장의 내용은 서로 연관되는 내용이 많으므로 같이 요약, 첨언을 하겠다.
밀은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는 권리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개성 역시 보장되어야 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이 기분 나쁘다고 해서 그들을 무조건적으로 처벌하면 안된다고 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가 명백할 경우는 국가에서 명백히 처벌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지만, 그러한 사항이 아닌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불이익을 받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사회적인 활동에서 제재를 받는다면 굉장한 불이익이 되고,
사람들은 그 사람과 더 이상 교제하지 않거나 뜸한 사이가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밀은 주장한다.
혹자는 개성의 추구가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강압적인 상태가 될 수도 있기에 개성의 억제를 주장한다.
하지만 밀이 보기에, 강자가 힘이나 간계를 통해서 이익을 얻는 것은 지금도 처벌 받는 사항이며,
민주화된 국가에서는 그러한 강제적인 개성의 추구가 억제되는 사회이기에 충분한 근거가 아니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은 법이나 주위 사람들의 상담, 조언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정 가능하다고 보는게
밀의 입장이다. 국가가 나서서 그들을 일일이 교정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고 한다.

 밀은 강자보다는 대중에의한 평준화, 특히 하향 평준화 되는 사태에 대해서 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교통, 통신의 발달과 더불어서 대의제 정치의 발달은 대중에게 굉장한 힘을 실어주고 
그들이 지닌 보편성이 옳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이는 곧 개성의 억압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대중이 주장하는 보편성의 강요는 새로움을 창조하여, 이 세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천재와,
그 천재의 주장을 일찍 받아들이는 선도적인 사람들을 억압하고 활동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이 세계 일반 전체에 유해하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소수의 천재와 뛰어난 사람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사항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는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은 너무나 많다.
단지, 그들이 나와 다르고, 나보다 뛰어남을 인정하고, 그들을 독려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162page 근처에서 부터 나오는 천재에 관한 이 내용 전문은 굉장히 익숙했다.
대학 입시생 시절 논술 수업 때 본 지문인 것 같다. 그때도 나는 천재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쪽을 
옹호했던 것 같다. 일반 대중의 힘을 무시하진 않지만, 뛰어난 천재가 중요함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본다.



 5장에서는 자유의 적용을 다룬다. 당시에 있던 금주법을 밀은 명백히 반대한다.
국가에 해가 된다는 명백한 이유가 없다면, 오락, 종교, 술의 자유는 지켜져야 한다.
국가에 해가 된다는 이유가 '그들만이 올바르다고 느끼는' 이유가 되서는 안된다.

 밀은 오락, 술, 종교 뿐만 아니라 교육에 있어서도 자유를 주장한다.
그 자유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미래의 세대에 대한 교육을 독점하여서
하나의 가치관만을 주입하지 않고, 그들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
그들 스스로 하나의 의견이나 사상,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면 획일된 사상을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고, 국가의 횡포가 있을 수도 있기에
공교육은 다른 사적인 기관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
지금과는 다소 다른 교육관이지만 꽤 설득력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소득이나 재력에 구애받지 않는
전인 교육을 위해서는 국가에서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것이 옳다고 보기에 이는 좀 더 생각해볼 문제다.
지금 선뜻 어떤 쪽이 옳다 그르다 판단은 할 수 없지만, 하나의 좋은 화두임에는 틀림 없다.
교육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최근엔 복지나 행정도 궁금해지기에... 한 번 공부해봐야겟다, 기약은 없지만.

 교육을 말하면서 밀은 부모의 역할을 굉장히 강조한다.
좋든 싫든 아이를 낳았으면 교육을 비롯해서 올바로 성장하도록 키워야한다고 한다.
아이는 부모의 소유물이 아닌, 독립된 인격체의 하나이므로 존중해야 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잘 길러야 한다고 한다.
아이를 제대로 기르지 못하거나, 가정에 충실하지 못하면 처벌해야 한다고도 주장하는 밀이다.
또한 법률이 가부장적인 색채를 버리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해져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밀은 참 괜찮은 사람 같다.


 밀은 국가기관의 과도한 개입과 비대한 권력을 매우 경계했던 입장 같다.
국가 기구에 모든 인재가 몰리는 상황도 비판하기 때문이다. 국가기관에만 인재가 몰린다면,
다른 기관에는 인재가 없고, 국가는 최상의 인력을 확보하여 일을 처리하게 된다.
국가기관에는 최상의 인재만 있기에, 국민들은 그들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쫓을 위험도 있고
민간부분에서 국가기관에 대한 견제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한다.
이는 꽤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다. 삼권분립이나 이권분립 등의 권력 독점 장치가 있긴 하지만
언론이나 시민단체 혹은 지식인 등의 민간의 감시가 없다면, 아무래도 국가의 권력 독점과
권력의 남용 등이 생길 여지는 많아지기 마련이다.

 중앙정부의 과도한 권력의 방지와 적극적인 정치참여의 이유로 밀은 지방자치도 옹호한다.
주민들은 그 지역의 정치와 사안에 참여함으로써, 스스로 그 지역의 발전에 참여하여
그 주인으로서의 역할과 자부심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인 것 같다.
배심원 제도의 약점도 인지했지만, 밀을 배심원 제도 자체는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런 지방 정부들의 의견을 보조하고, 국소적인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중앙정부는
넓은 시야로서 정책들을 입안하고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그 권력이 과도하면 안 된다고 밀은 거듭 강조한다.



 여기까지 봤을 때, 밀이 주장한 내용은 현대에서 적용되는 내용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현대의 큰 정부가 아닌 작은 정부 혹은 야경 국가와 같게 느껴진다.
시대적인 차이가 있어서 그렇겠지만, 정부의 지나친 규제나 간섭이 없어야함은 지금도 납득가는 내용이다.
밀도 그렇고,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등 대중이 우중으로 변하고 잘못된 판단과 
그릇되거나 광기에 가까운 대중심리에 휩싸이는 것들을 굉장히 경계하는 지식인이 많아 보인다.
사실 인터넷의 발달로 이들이 걱정한 바가 더욱 심화되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의 확장을 막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단지, 자정이 이루어지길 기다리고 그러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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